프롤로그
평소 AI를 활용하여 이것저것 해보다가, 기획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게임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동안 웹이나 앱 개발만 하다가 결국 만들고 나서 가장 재밌던게 게임 개발이었기에, PoC 단계를 모두 구현해보자는 마음으로 개발을 시작하였다.
게임은 웹 게임으로 개발하였다. 게임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웹으로 구현한 이유는, AI를 최대한 활용하여 개발하기에 웹이 최적화였고 이미 웹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도 있었기에 웹을 선택했다.


이번 게임은 완성된 코어 루프까지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너무 어렵거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는 배제하였다. 클리커 게임처럼 시스템은 간단하지만 자꾸 "조금만 더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장르를 '뱀서라이크'로 정했다.
게임 컨셉 및 기획
- 장르 : 뱀서라이크, 로그라이트
- 코어 루프 : 자동 발사 무기로 적 처치 → 레벨업 카드로 빌드 구성 → 보스 격파 → 사망 시 얻는 포인트로 캐릭터 성장
- 게임 컨셉 : 네온 + 사이버 느낌의 bullet heaven 게임
내가 장르를 뱀서라이크로 적어놓았긴 했으나, 의도한 경험은 일반적인 뱀서라이크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의 뱀서라이크는 한 런 안에서 약했던 캐릭터가 점차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쾌감을 준다. 하지만 나는 처음과 그 다음 런 사이의 성장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 플레이어가 첫 런에서 "어? 나 너무 약한데?", "적이 너무 센데?" 라고 느끼게 만들고, 사망 후 등장하는 영혼 포인트와 스킬트리를 통해 "아, 죽을수록 강해지는 구조구나" 를 깨닫게 한다. 이후 좌절 → 성장 체감 → 재도전의 사이클이 반복되며, 점차 더 어려운 웨이브를 견딜 수 있게 된다.
- MDA 프레임워크로 역설계
| 의도한 경험 (Aesthetics) | 실제 플레이어 행동 (Dynamics) | 게임 메커니즘 (Mechanics) |
| "나 너무 약한데?"라는 의도된 경험 | 첫 런은 짧은 시간 내 사망하게 됨. 보통 1~2번째 보스 부근에서 사망 |
캐릭터 기본 스탯을 의도적으로 낮게 설계 |
| "죽을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체감 | 매 런마다 조금씩 더 오래 생존 + 새로운 스킬 등장 |
사망 시 영혼 포인트를 획득하며, 스킬트리에 사용 |
| "한 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욕구 |
결과 화면에서 다음 목표가 즉시 인식 | 사망 직후 화면에 영혼 포인트 / 스킬트리 노출 |
기획 단계에서는 먼저 게임의 장르와 코어 루프를 생각한 후, 레퍼런스가 되는 게임들을 가져와 AI에게 분석을 시켰다. 게임을 만들때만 해도 게임의 컨셉과 톤을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았는데, 이또한 AI와 상의하며 컨셉을 정했다.
개발 환경 구축
이번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사실 얼마 전 알게된 플러그인 때문이었다.
총 49개의 게임 개발 전문가 에이전트를 통해 나만의 게임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러그인이다. 기획, 아트, 코딩, QA, 디렉터까지 다양한 에이전트가 있고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되는 스킬들이 있다. 또한 게임 엔진에 따라 맞춰서 개발할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웹 개발이며 에이전트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에이전트만 일부 가져와 사용하였다.
GitHub - Donchitos/Claude-Code-Game-Studios: Turn Claude Code into a full game dev studio — 49 AI agents, 72 workflow skills,
Turn Claude Code into a full game dev studio — 49 AI agents, 72 workflow skills, and a complete coordination system mirroring real studio hierarchy. - Donchitos/Claude-Code-Game-Studios
github.com
개발 환경은 Phaser 4 + TypeScript 기반으로 개발하였으며, 주로 사용한 AI는 클로드 코드이다.
이번에 가장 중요했던 건 클로드 코드 의 Teams 기능을 통해 여러 개의 에이전트를 병렬로 작업하는 것이었기에, 앞서 말한 플러그인을 활용하여 각 에이전트마다 역할을 도맡아 작업하도록 하네스를 구축하는 일을 진행하였다.

개발 과정
개발 환경을 구축한 이후, 가장 먼저 디자이너가 게임에 필요한 시스템을 파악하고, 게임 기획서를 작성하였다.
처음엔 30개가 넘는 시스템 리스트를 뽑아내길래, 레드팀에 검수를 맡기고 PoC 단계에 필요한 정도로만 추려내어 20개 내외의 기획서를 완성시켰다.
모든 기획서(GDD) 완성 후 코더가 기획서대로 작업하며 게임을 구현하였고 이 모든 과정은 메인 디렉터가 작업 과정을 관리하며 나한테 보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개발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것은 구현된 게임을 플레이해보며 게임 디자인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기획서대로 구현을 해도 추가를 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었고, 내가 생각한 게임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또 의미없는 코드나 시스템을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이 부분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고쳐야했다.
게임 개발을 해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획의 허점은 분명 존재해서, 막상 구현되면 내가 생각한 그림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문제가 기획의 부족인지, 혹은 소통 오류나 기술 부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상황마다 다르기에) 그래서 기능을 구현하면서 빠르게 확인하고 수정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개발 과정에서 내가 무슨 게임을 만드려고 했는지, 시스템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존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없어져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계속 상기시키며 AI에게 지시사항을 내렸다.
정말 많이 신경 쓴 부분이 UX였다. 뱀서라이크의 게임 플로우를 참고하였기에 장르의 문법을 파악하고 그것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각 웨이브가 나타나는 시간대, 레벨업 시 나타나는 효과, 카드 선택, 보스 스폰 연출, 사망 시 연출과 그 다음 플레이로의 연계 등...어떻게 해야 많은 시스템이 끊기지 않고 연계되어 있다고 느낄지, 플레이어가 죽고 난 후 그 다음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지를 고민하며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며 UX를 설계하였다.


문제 해결 과정 : AI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이 스킬트리 UIUX였다. 스킬트리 UI는 인게임 UI에 비해 요소가 많고 스킬트리가 확장되는 방식, 노드 간 연결 방식이 복잡했다. 나는 우선 레퍼런스가 되는 스킬트리 이미지를 가져와서 그것을 토대로 작업하려고 했고, 이미지를 보여주며 우리 게임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문제는 AI가 이미지를 따라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AI는 스킬트리가 어떻게 뻗어나가야 하는지, 레퍼런스 속 UI는 어떻게 설계되어있는지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았음) 레퍼런스 이미지처럼 구현하는 것에만 집중했기에, 나의 게임에 온전히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AI가 삽질하는 것만을 보다가 짜증이 나버린 나는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는데, 우선 "우리 게임만의 UI를 만들어서 보여줘야 겠다." 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미지를 뽑아 보았으나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사실 저렇게 이미지를 뽑아내도 AI가 완벽하게 만들어내지 못하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수정하기에도 쉽고, 개발도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그래서 나는 클로드 디자인을 활용해서 스킬트리 UI를 새롭게 만들었다. 레퍼런스 이미지와 기존 스킬트리의 정보를 md 파일로 정리해서 제시하였고, 클로드 디자인이 만든 산출물을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만족스럽지 않을 거란 건 예상했기에, 산출물을 보며 각 노드가 어떻게 뻗어나가야 하는지, 영역별 구분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스킬트리 구현에 필요한 규칙을 설명하면서 수정해나갔다.


디자인이 완성된 후, 이를 html 파일로 내보내서 게임 프로젝트에 넣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에 맞게 마이그레이션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제 코드가 있으니 쉽게 구현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딸깍이 되지 않았고...아예 코드 로직 분석부터 다시하라고 시킨 후, 전체 디자인과 컴포넌트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가져오라고 지시하였다. 긴 수정의 수정의 갈아엎기의 수정을 더해서 나온 결과물이 지금의 UIUX이다.

결과물 요약



에필로그
이전에도 설계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긴 했지만, 이번만큼 개발 환경 구축에 신경 쓰고 기획서에만 일주일 가까이 박아본 프로젝트는 없었던 것 같다. 확실히 기획을 명확하게 잡아두고 에이전트를 여러 개 돌리니까, 중간에 개발 방향이 삼천포로 빠지지도 않고 효율도 오른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발이 쉬워지면서 발생한 문제점도 있었다. AI로 개발하다 보면 자꾸 새로운 것을 추가하려는 욕심이 생기게 된다. 특히 AI가 다음 단계를 추천하고 알아서 구현까지 해버리면, 점차 내가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 본질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내가 원하던 코어 루프까지만 구현하는 데 집중하면서, PoC 단계에서 필요 없는 기능과 코드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기획 단계에서 생각한 게임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계속 중심을 잡아야 했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했지만, 막상 완성된 이 게임이 그렇게 특별한 게임성을 가지진 않았다. 플레이해 보면 솔직히 엄청나게 신선하거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재밌는 게임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는 기획적으로나, AI 활용적으로나 배운 점이 정말 많았다.
기획 측면에서는 평소에 당연하게 넘겼던 디테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AI 덕분에 코딩 부담이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2번째 보스를 얼마큼 강하게 설계해야 할까?", "5분이 지났을 때 캐릭터의 성장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사망 후 나타나는 화면은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 "스킬트리에서 정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유저 경험과 밸런스적인 고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잡아야 할 밸런스가 많지만..ㅠ) 기획자로서 할 수 있는 고민을 해본 경험이었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점은...
- 게임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
- 불필요한 시스템을 과감히 쳐내는 것
- AI가 모든 것을 다해줄 거라는 믿음을 버릴 것
이제 AI로 게임의 형태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재미'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인 것 같다.
좀 더 특색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한달동안 맥스 요금제로 진행한 프로젝트여서 앞으로는 이렇게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