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막을 30시간 넘게 플레이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메인 퀘스트를 끝까지 클리어한 뒤에 리뷰를 쓰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지만, 초반 30시간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인상을 느꼈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경험이 지금까지 느낀 것과 완전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 후기를 남겨보려 한다.
이미 이 게임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와 아쉬운 평가가 충분히 많이 나와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모든 것을 다 말하기보다, 내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느낀 장단점과 붉은사막이 왜 재미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겠다.
🟢 붉은 사막의 장점
1. 다양한 전투 빌드와 압도적 액션성
화려한 액션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이 게임을 미워하기 어렵다. 과장된 이펙트와 사운드,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타격 시 발생하는 강한 히트 스탑과 슬로우 모션은 강렬한 액션 쾌감을 제공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전투가 단순히 “멋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 스킬, 어비스 기어 조합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꽤 달라지기 때문에, 유저가 자기 취향에 맞는 전투 빌드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정해진 방식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히지 않은 나만의 전투 방식을 설계하고 증명해 내는 과정 자체가 큰 매력 요소이다.
2. "이게 된다고?" 상상력을 시험하는 상호작용 요소들
맵의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 직접 갈 수 있다"는 감각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더 놀라운 것은 물리적 상호작용의 디테일이다. "이렇게 해도 진행이 될까?" 싶은 변칙적인 플레이가 실제로 작동할 때가 많다. 정해진 루트가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퀘스트나 퍼즐을 해결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 NPC와의 상호작용 디테일은 레디리2 같은 다소 아쉬울 수 있으나, 월드 자체와의 상호작용과 자유도에서는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3. 그래픽이 곧 게임성
개인적으로 "그래픽은 첫인상일 뿐, 결국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시스템"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붉은사막은 처음으로 "압도적인 그래픽 자체가 하나의 게임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게임이다. 후술할 조작감이나 UX 문제로 피로도가 쌓이다가도, 여정 중 마주치는 풍경 하나에 힐링을 받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 붉은 사막의 단점과 아쉬운 점
1. 직관성이 떨어지는 UI / UX
최근 플레이한 게임 중 가장 불편한 UI/UX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인벤토리는 기본적인 분류 체계조차 직관적이지 않고, 장비를 착용하거나 해제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다. 처음 양손 검으로 바꾸고 싶었을 때도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다. 책이나 중요 문서를 확인하는 방식도 인벤토리 안에서 한 번 더 들어가야 해서, 사소한 정보 접근조차 번거롭게 느껴졌다.

편의성을 위해 F1, F2, F3 같은 퀵슬롯 구조를 넣은 것 같지만, 실제 체감상으로는 오히려 조작이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기능은 많은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쓰게 만드는 설계가 부족하다.
2. 친화적이지 않은 조작 체계
언급이 많아 빼고 싶었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면 계속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붉은사막의 개발진의 조작 이해도는 콘솔은 물론, 키보드/마우스 환경에 대한 이해도도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다.
여러 행동이 [Ctrl]과 묶여 있어 새끼 손가락이 계속 불편하고, 음식 섭취는 [F3]를 눌러야 한다. NPC와 대화할 때도, 전투 도중 회복할 때도 조작 부담이 크다. 게임 내내 손가락이 편한 순간이 거의 없다.
문제는 불편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조차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몇몇 조작은 아예 가르쳐주지 않거나, 실제 동작과 다른 방식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말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게임이 시키는 대로 이행했지만 진행이 되지 않았고, 공략을 찾아보니 전혀 다른 방식이 훨씬 쉽게 해결되었다. 이런 경험은 조작 난이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안내가 부정확해서 생기는 스트레스다.
3. 파편화된 동선, MMORPG식 퀘스트 디자인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퀘스트였다.
초반 퀘스트부터 흐름이 매끄럽지 않고, 갑자기 가보지도 않은 장소로 가서 설명도 거의 없던 인물을 만나야 하는 식의 전개가 많다.
또 하나의 퀘스트 안에서 여러 NPC를 만나거나 여러 장소를 오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 동선이 너무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A를 찾고, B를 찾고, C를 찾고, D를 찾는 동안 계속 산과 절벽을 넘나들어야 한다. 하나의 퀘스트인데 이동 피로도가 너무 크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의 퀘스트는 오픈월드의 장점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MMORPG식 심부름 구조의 단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따라오라고 하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뒤 1000m 너머의 전혀 다른 지역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퀘스트였다. 가본 적도 없는 장소로, 맥락도 충분하지 않은 채 이동을 강요받는 느낌이라 꽤 당황스러웠다.
4. 레벨 디자인의 부재와 시스템적 결함
붉은사막의 맵은 정말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유도하려는지에 대한 설계 의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풍경은 압도적이지만, 그 풍경이 플레이어를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약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건물과 넓은 자연경관이 동시에 펼쳐져서,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하고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는 많지만, 그 콘텐츠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흩어져 있는 느낌이다.
특히 초반에는 말의 필요성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맵 대부분이 평지가 아니라 산악 지형이고, 오르막과 내리막, 절벽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말로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 물론 나중에는 전설 말이나 다른 이동 수단으로 기동성이 보완되겠지만, 나는 더 빠르고 간편한 활공을 택했다. 말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서 그냥 뛰거나, 날아다닐 수 있으니 그 필요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말을 아예 안탄다는 것은 아님) 초반 체감만 놓고 보면 “이 게임에서 말이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이 세계는 크고 아름답지만, 그 큰 세계를 플레이어가 어떻게 탐험해야 하는지에 대한 레벨 디자인적 재미와 시스템과의 결합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5. 학습 과정을 없애버린 퍼즐 구조
붉은사막의 퍼즐은 종류가 방대하고 중복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식 -> 학습 -> 문제 해결'이라는 훌륭한 퍼즐 시스템 설계의 기본 사이클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찌르기' 기술로 기둥을 돌려야 하는 퍼즐을 처음 접했을 때, 나 자신에게 그 기술이 있는지, 그 기술이 해법인지 전혀 힌트를 얻을 수 없다. 우연히 해결하면 카타르시스가 오지만, 시스템의 불친절함 때문에 막혔을 때 공략을 보고 깨면 쾌감 대신 불쾌감만 남게 된다.
6. 시스템의 딜레마가 낳은 불합리한 보스전
이 게임에서 음식 섭취는 사실상 사기급이다.
회복 수단으로서 쿨타임이 짧고, 모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투 중에도 계속 HP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개발진은 이 강력한 회복 수단을 전제로 보스전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설계한 인상을 준다.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얻어맞으면 반격이 아니라 생존이 우선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몸이 뜨는 순간부터 다시 일어나는 동안에는 한순간의 무적 판정도 없다. 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계를 이어간다. 결국 플레이어는 전투의 리듬을 가져가기보다, 음식 섭취로 버티는 쪽에 가까워진다.
저스트 회피와 패링 같은 시스템이 있어도, 실제 보스전에서는 연계에 휘말리기 쉬워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어렵다.
패턴을 읽는 재미보다, 맞고 나서 버티는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는 전투는 붉은사막의 매력인 액션 쾌감을 오히려 깎아먹는다.
7. 왜 있는지 잘 모르겠는 시스템들
- 암살 : 1대다(수십~수백 명) 전투가 빈번한 이 게임에서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으며, 적들의 인식 범위도 불합리하다. 숨어 있다고 생각해도 쉽게 발각되고, 가까이 가는 순간 바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1분 이내로 3명 암살하기” 같은 도전과제는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

- 클리프와 친구들 : 클리프와 동료들은 각자 다른 무기와 기술을 갖고 있지만, 스킬 트리와 성장 방식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나는 초반부터 클리프를 키웠고 대부분의 스킬 포인트도 여기에 투자했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를 쓰려면 그 캐릭터를 따로 또 육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얻는 보상이나 필요성이 충분히 설계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스토리 진행 중에 그 캐릭터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혹은 강제로 사용하게 만드는 구간이 있다는 점이다.
유저는 이미 익숙하고 강한 클리프를 두고, 전혀 성장시키지 않은 캐릭터를 억지로 써야 한다. 이런 구조는 “다양한 캐릭터를 써보라”는 의도보다, 시스템적으로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유저에게 떠넘기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유저는 왜 이 게임을 계속 하게 되는가?
이렇게 단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간다.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게임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게임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붉은사막은 모든 시스템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된 게임이 아니다.
보통의 게임은 핵심 기획 의도에 맞춰 시스템과 콘텐츠를 정리하고, 그 결과 플레이어가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된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붉은사막은 그보다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오픈월드를 보여주겠다는 목표 아래 각자 다른 역할을 하는 요소들을 한 세계 안에 넣어둔 느낌이 강하다.
어떤 시스템은 유난히 재미있고, 어떤 시스템은 과하게 불편하며, 어떤 요소는 굳이 없어도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불균형 자체가 이 게임의 개성이기도 하다.
붉은사막을 비유하자면 일종의 뷔페 같다.
어떤 음식은 정말 맛있고, 어떤 음식은 도저히 못 먹을 정도다. 그런데 음식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정말 맛있었던 한 가지 때문에 계속 남게 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몇 가지 음식만 맛이 없어도 전체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 붉은사막은 플레이어가 어떤 요소에 크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게임이다.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액션과 탐험이었다. 불편한 조작감, 답답한 퍼즐,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보스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느껴지는 타격감과 광활한 세계를 직접 돌아다니는 감각은 분명히 강한 흥미를 준다.
내가 느낀 붉은사막의 게임성은, 단순히 넓기만 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넓음을 실제로 경험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압도적인 그래픽, 눈에 보이는 곳까지 실제로 갈 수 있다는 감각, 그곳에 도착하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무언가의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다는 구조, 그리고 그 콘텐츠가 반복되기보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 이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붉은사막만의 재미가 만들어진다고 느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요소도 있고, 동선 설계와 UX가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규모의 세계를 직접 게임으로 구현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꽤 인상적이었다. 붉은사막의 재미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거칠고 불균형한데도 그 안에 분명히 강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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