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동안 묵혀두었던 레데리2를 다시 플레이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붉은 사막을 보면서, 여러 명작 게임들이 생각났다. 붉은 사막 내에서 레데리2에서 본 듯한 시스템들이 보였고, 레데리2는 무엇이 달랐길래 그렇게 완벽한 서부 세계를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레데리2를 플레이하며 이런 점이 다르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이 게임은 왜 이렇게 불편하지?”
아이템 하나 줍는 것도 오래 걸리고, 빠른 이동도 한번에 딸깍으로 되지 않으며, 총도 전투 전에 미리 챙겨가야 한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었고, 게임을 장시간해도 조작법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레데리2가 아직까지도 호불호 갈리는 조작법을 고수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러한 느림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게임의 방향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리듬에 가깝다. 락스타 게임즈는 빠르고 효율적인 오픈월드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서부의 삶을 직접 살아가는 듯한 몰입형 경험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스토리나 그래픽만이 아니라, 게임 안의 여러 시스템에 아주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레데리2가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게임이었고, 그 방향성을 위해 어떤 시스템들이 설계되었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1. 말 시스템
서부 시대 배경에서 말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개발진도 이를 알고 있었고, 플레이어에게 '말'을 더욱 강한 존재로 인식시키고 싶었다.
레데리2는 말을 단순 탈것이 아니라 이동수단 + 장비 보관함 + 정서적 동반자로 설계했다. 로드아웃을 몸에 무한히 들고 다니지 않게 하고, 무기와 짐을 말에 묶어 두어 "전투 전에 무엇을 챙길지" 생각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게임이 자신의 무기를 가상의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스템은 플레이어를 더욱 귀찮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러한 불편함은 여정과 준비 자체에 의미를 주며,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말과 밀접하게 된다.
GDC 인터뷰에서도 개발진은 말을 아서의 "가장 유용한 자산이자 깊은 유대가 형성되는 존재"로 설명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말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며 유대감을 쌓게 되고, 게임에서 말은 나의 가방이자 이동수단이자 최고의 동료가 된다. 개발진은 플레이어와 말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단순한 기능적 요소뿐만 아니라 서사적 요소까지 부여하였다.
Red Dead Redemption 2: A deep dive into Rockstar's game design
Rob Nelson, co-head of Rockstar North, talked about the studio's design choices in creating the ambitious Red Dead Redemption 2.
gamesbeat.com
2. 상호작용형 NPC
레데리2의 방향성에서 중요한 축을 맡는 시스템이다.
락스타 게임즈는 "누구와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래서 NPC가 자기 일을 하다가도 플레이어를 보고 놀라거나, 쳐다보거나, 대화하고, 다시 원래 행동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이 시스템 덕분에 게임 세계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반응하는 사회처럼 느껴진다. 즉, 오픈월드의 재미를 단순 퀘스트 반복보다 사람과 상황의 반응성에서 끌어오려 한 것이다.
전통적인 NPC는 플레이어에게 임무를 주거나, 간단한 대화만 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레데리2의 NPC는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루틴을 가지고 움직이며 플레이어와의 과거 상호작용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특정 NPC를 공격했다면 나중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적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레데리2의 NPC는 감각-사고-행동(Sense-Think-Act) 주기를 가지며 자신만의 생활을 한다. 각 NPC만의 고유한 루틴이 이 게임이 정말 실제 배경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How AI Is Used in Video Games: The Sims 4 and Red Dead Redemption 2 — Arts Management and Technology Lab
Artificial intelligence (AI) has been fundamental since the 1950s in game design and development, but a subset of AI called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GenAI) is now deployed in nearly all video games to create clever, responsive, or adaptive behav
amt-lab.org
3. 의도된 불편함 : 느린 행동과 모션
레데리2에서는 가죽 벗기기, 시체 뒤지기, 말 타기, 무기 꺼내기 같은 행동을 빠르게 넘기지 않고, 대부분 실제 움직임으로 보여준다. 개발진은 이런 연출이 게임의 페이스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컷으로 끊지 않고 월드 안에서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몰입 유지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반응이 너무 느리거나 모션이 쓸데없이 길어서 짜증이 날때도 있었다. "굳이 이렇게 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서가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시체를 뒤지고, 사람을 들쳐메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그 행위를 내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유저는 유독 긴 모션과 느린 템포가 싫어서 게임을 접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개발진의 '의도된 불편함'이다. 게임의 방향성을 위해 편의성 대신 "내가 진짜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감각을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4. 서사를 알 수 있는 캠프 시스템
레데리2의 스토리는 아서 모건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 더 린드 갱단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캠프다.
캠프는 퀘스트를 받는 장소이면서, 동료들이 쉬고, 대화하며 관계가 쌓이는 생활 공간이다.
중요한 점은 많은 서사가 이곳에서 강제 연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와 상황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일부러 다가가서 들으면 캐릭터의 서사를 더 알 수 있고, 그냥 지나치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보통 내러티브 게임은 중요한 정보를 컷신이나 대사로 강하게 전달하려 하지만, 레데리2는 반대로 세계 안에서 서사를 주워 담게 만든다. 덕분에 캠프는 단순한 거점이 아니라, 이 게임의 주제인 공동체와 붕괴, 유대와 불신을 체감하게 해 주는 핵심 장치가 된다.
5. 황야에서 생존하는 서부를 만드는 시스템들
레데리2의 메인 스토리를 깨고나면 주요 콘텐츠는 퀘스트가 아니다. 사냥, 낚시, 제작, 탐험이 사실상 레데리2의 주요 콘텐츠이다. 개발진은 전작의 "황야에 혼자 존재하고, 버티고, 살아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사냥, 제작, 탐험이 단순 서브 콘텐츠가 아닌 서부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받치기 위한 생존 활동이 되길 바랬다.
이를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생태계 시스템이다.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단순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서부 세계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다뤘다.
레데리2의 다양한 서식지에 약 200종의 동물, 새, 물고기가 살며 환경에 따라 행동하고 반응한다. 게임은 여러 생태계를 가지며, 야생동물은 서로 간의 먹이사슬을 가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전투보다 관찰, 사냥, 탐험을 풍부하게 만들고, “살아 있는 서부 시대”라는 방향성을 강화한다.

앞서 말했듯,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사실 '편리한 게임'은 아니다. 빠른 이동, 즉각적인 전투, 다양한 퀘스트로 이루어진 오픈월드를 기대하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요소가 요즘 오픈월드 게임의 일반적인 편의성과는 반대 방향에 있음)
그런데도 레데리2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 불편함조차도 게임의 방향성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빨리 가라고 말하지 않고, 대신 "이 세계 안에서 천천히 즐겨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앞서 말한 시스템과, 또 언급하지 않았던 크고 작은 시스템 전체를 통해 전달된다.
레데리2를 명작으로 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은 개발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감각을 주고 싶은지 분명히 파악하고, 시스템 전체를 게임에 방향성에 맞춰 설계했기에 이런 게임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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